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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후반, 나는 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시작했을까?

 

솔직히 저는 '퇴직'이라는 단어를 오랫동안 남의 일처럼 여겼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제 손을 떠나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던 어느 날, 문득 '나는 이 다음에 뭘 하는 사람이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퇴직 이후의 삶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여성이라고 해서 그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그때부터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은퇴 허니문, 3개월 뒤에 찾아오는 진짜 문제

퇴직하고 나면 처음 한두 달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푹 쉬세요"라고 말해주기도 하고, 자녀들도 밥 먹으러 오고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하죠.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은퇴 허니문(retirement honeymoon)'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은퇴 허니문'이란 퇴직 직후 일시적으로 찾아오는 해방감과 가족의 관심이 맞물려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보이는 기간을 말합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통상 3개월이 지나면 주변에 사람이 없어집니다. 자녀들은 30대로 한창 바쁘고, 배우자도 자신만의 일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나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의문이 본격적으로 밀려드는데 심리적으로 가장 낮은 지점은 보통 퇴직 후 6개월 전후라고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퇴직 후유증'입니다. 퇴직 후유증이란 은퇴 허니문이 끝난 뒤 찾아오는 무기력감, 정체성 혼란, 사회적 고립감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특히 남성들이 충격을 크게 받는 이유는, 오랫동안 성과와 직책으로 자신을 증명해왔기 때문입니다. 재직 중 맺었던 인맥의 70~80%가 퇴직과 함께 한 번에 사라집니다. 직장을 광화문이나 강남에 두고 온 셈이죠. 반면, 여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인적 네트워크가 넓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혼자 남겨지는 공허함이 덜한 편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여성이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얘기는 뒤에서 따로 짚겠습니다.

요약: 은퇴 허니문은 약 3개월로 짧고, 그 후 찾아오는 퇴직 후유증이 진짜 문제다.

 

재취업의 현실, 데드라인은 1년이다

퇴직 후유증을 극복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통계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2023년 6월 기준 고용 동향을 보면, 60~64세 취업률은 65.3%, 65~69세는 52.2%, 심지어 70~74세도 31.9%에 달합니다(출처: 통계청). 평균적으로 만 73세까지 어떤 형태로든 일을 이어간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퇴직하면 다 끝'이라는 인식과는 꽤 다른 현실이죠.

그런데 재취업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50대 사무직 퇴직자의 경우가 가장 어렵습니다. 기술직과 달리 관리직 자리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이전 직장에서 쌓은 경력이 새 조직에서 곧바로 통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들은 사례 중에는 공기업 임원 출신이 퇴직 후 5년간 공백을 두다가, 상담 내내 "그때 그 회사가 얼마나 좋았는지"만 얘기하셨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5년을 마음속으로 계속 회사를 다니고 계셨던 거죠. 안타깝지만, 이분처럼 과거의 프라이드가 다음 선택지를 스스로 좁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재직 기간도 현실적으로 봐야 합니다.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50~60대 주된 일자리 퇴직자가 재취업한 뒤 평균 재직 기간은 약 1년 6개월에 불과합니다. 60대 이상은 사실상 1년으로 보는 게 맞을 정도입니다. 계약직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공백 기간이 1년을 넘어가면 직업적 선택지 자체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점도 직시해야 합니다.

  • 주된 일자리 퇴직 평균 연령: 49.3세(2021년 기준)
  • 재취업 후 평균 재직 기간: 약 1년 6개월
  • 공백 기간 1년 초과 시 선택 가능한 일자리가 급감
  • 60~64세 취업률 65.3%, 70~74세도 31.9% 유지
요약: 재취업 시장은 냉혹하고, 공백 기간 1년이 사실상 데드라인이다.

제2의 인생

 

창업, 로망인가 현실인가

퇴직 후 창업을 선택하는 비율도 적지 않습니다. 2020년 하나은행 백세행복연구센터 자료를 보면 퇴직자 중 약 17.9%가 자영업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하나은행 백세행복연구센터). 전체 퇴직자의 약 3분의 1이 50~60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창업이라는 선택지를 '원해서' 고르는 분보다 재취업이 안 되고 다른 대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고르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가혹합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창업 재도전 지원 사업 참여자를 분석한 결과, 창업 3년 차 생존율은 44.6%에 불과합니다. 즉 절반 이상이 3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뜻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실패를 경험한 뒤 재창업을 했을 때 생존율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라간다는 통계입니다. 달리 말하면 처음부터 제대로 준비한 사람이 그만큼 드물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물론 사례 중에는 자신이 몸 담았던 일과는 다르지만 대학에서의 전공을 살려 근무 당시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은 후 진로를 변경해 원래의 전공을 살리신 분도 있습니다. 그 분은 대학 동기들과 자그마한 제조업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벌써 3년 이상이 지났지만 크게 번창하지도 망하지도 않는 소소한 벌이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준비의 깊이가 다른 경우였죠. 창업을 꿈꾼다면, '퇴직하고 나서 준비해야지'가 아니라 재직 중에 이미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요약: 창업 3년 생존율은 44.6%, 준비 없이 뛰어드는 창업은 퇴직금을 갉아먹는 도박이 되기 쉽다.

 

여성의 퇴직과 경력 목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퇴직 후 심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주 이런 말이 나옵니다. "여성들은 굳이 일을 안 해도 불행하지 않다." 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살짝 불편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말 뒤에 숨겨진 전제가 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제 또래 여성 중에는 20대에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가 되어 이후 수십 년을 사회와 분리된 채 살아온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의 경우, 남편이 퇴직하고 집에 머무르는 상황이 오히려 본인에게도 큰 혼란이 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반대로 저처럼 20대부터 지금까지 사회생활과 가정을 병행해온 여성들은 퇴직이라는 단어가 분명히 코앞에 닥칩니다. 어느 쪽이든, 퇴직 이후의 생애 설계는 여성에게도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생애 설계(life design)란 은퇴 이후의 시간을 단순히 '쉬는 기간'이 아닌 새로운 역할과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으로 보는 개념입니다.

저의 경우, 수없이 고민을 뒤집고 엎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가르치는 일'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마침 한류 붐과 함께 한국어 교육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교원자격증을 가진 한국어 교사가 필요해진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이버대학 한국어학과에 편입해 3, 4학년 2년을 다시 공부했습니다. 더뎌진 머리를 원망하면서도 꾸준히 이어나가서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냐'보다 '얼마나 일찍, 얼마나 구체적으로 경력 목표를 잡느냐'였습니다. 경력 목표(career goal)란 단순히 취업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욕구를 바탕으로 설정하는 중장기 직업 방향성을 말합니다.

요약: 여성도 퇴직 이후의 생애 설계와 경력 목표 수립이 필요하며, 준비는 재직 중에 시작해야 한다.

 

예상 질문

Q. 은퇴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누구나 퇴직 후유증을 겪을까요?

A.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겪는다고 보기는 어렵겠지요. 다만 퇴직 전부터 생애 설계를 구체적으로 해온 분들은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하다는 시각도 있고, 반대로 아무리 준비를 잘 해도 막상 닥치면 당황스럽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경험으로는 완전한 면역은 없고, 준비의 깊이가 회복 속도를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Q. 퇴직 후 재취업과 창업 중 어떤 게 더 나을까요?

A. 창업이 재취업보다 낫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창업 3년 생존율이 44.6%라는 통계가 있는 반면, 재취업 후 평균 재직 기간도 1년 6개월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두 선택지 모두 준비 없이 뛰어들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점은 같다고 합니다. 저는 개인의 경력 목표와 재정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Q. 여성은 퇴직 준비를 따로 해야 할까요?

A. "여성은 안 나가도 불행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지만, 전업주부로 지낸 경우라면 남편의 퇴직이 본인에게도 생활 리듬의 큰 변화를 분명 가져옵니다. 사회생활을 병행해온 여성이라면 퇴직이라는 전환점이 더 직접적으로 찾아오겠죠. 어느 쪽이든 자신만의 생애 설계와 경력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Q. 그렇다면 퇴직 준비는 몇 살부터 시작하는 게 적당할까요?

A. 주된 일자리 퇴직 평균 연령이 49.3세라는 통계를 감안하면, 늦어도 40대 중반부터는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좀 늦게 시작했지만, 그래도 재직 중에 자격증 취득과 편입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퇴직하고 나서 준비를 시작하면 공백 기간 1년이라는 데드라인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옵니다.

 

결론

퇴직 후의 삶을 돈 문제로만 보다가 막상 60대 초반에 당황하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 저는 이것이 단순한 남성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은퇴 허니문이 끝나고 퇴직 후유증이 찾아왔을 때, 버텨낼 수 있는 것은 결국 미리 잡아둔 경력 목표와 생애 설계입니다.

저도 여전히 완성된 답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것은, 퇴직 이후의 '제2의 삶'은 퇴직하고 나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조금씩 쌓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향이든, 지금 당장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준비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PXUdNAWAG4E